수메르인의 문자와 길가메시

수메르인-점토판

수메르인의 문자와 길가메시

수메르인들은 도시를 만들었을 뿐만아니라 문자도 사용했습니다. 이들은 언어로써 쐐기문자나 점토문자를 사용했고, 이를통해 역사를 기록하고 대서사시인 길가메시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문자를 만들었던 것일까요?

수메르인들과 문자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수메르인들은 적어도 기원전 3000 년경에 벌써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처음에 사용한 문자는 나일강 유역이나 황하 유역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림문자였습니다.

이 문자는오리엔트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로서, 어쩌면 이집트의 그림문자도 이 문자에서 배운 것이 아닌가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문자를 진흙판에 그려 넣었습니다. 그 후 그들은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2000년 사이에 일종의 표음문자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말랑말랑한 진흙만에 갈대 펜으로 쐐기 모양 의 표식을 찍은 후 이를 말려서 보존한 것이다. 이것이 곧 유명한 설형문자 (cuneiform letter)입니다. 후에 페니키아인들(Phoenicians)이 이것에 서 더욱 간편한 표음문자인 알파벳을 만들어 내고 그 후 다시 그리스인들이 페니키아 문자를 본떠 그들의 알파벳을 만들어 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실상 알파벳과 문자의 발명가가 수메르인들인 것입니다.

수메르인들과 법률

법률은 수메르인들이 남긴 또 하나의 귀중한 유산입니다. 이 또한 문자의 발명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근년에 발견된 ‘우르남무(Urnammu) 법전’은 수메르인들에 의해서 기록된 인류 최고의 법전이다. 가장 오래된 법전인 이 법전에는 부패한 관리를 단속하고, 공정한 도량형제도를 제정 하고 고아나 과부를 보호할 것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오늘날의 복지체제나 형벌체제의 기본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형벌은 그 이후에 제정 된 리피트 이시타르(Lipit Ishtar) 법전 에시누나(Eshinunna) 법전이나 그 유명한함무라비(Hammurabl) 법전보다 오히려 온화한 편이었습니다. 수메르인들에게서 는 형벌이 대부분 벌금으로 치러졌던 것이다. 관대한 수메르인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길가메시와 대서사시

수메르인들이 남긴 유산으로 그 후 특히 서양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전통은 길가메시의 서사시에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인 죽음이 이 서사시의 주제였습니다. 3분의 2는 신이며 나머지 3분의 1은 인간인 영웅 길가메시는 또 한 사람의 초인(人) 엔키두(Enkidu)와 힘을 합쳐 지상의 괴물들을 퇴치합니다. 그러나 엔키두의 죽음을 보고 상심한 길가메시는 불사를 찾아 헤매지만 끝내 이를 얻지 못합니다. 그가 만난 어느 주막 여주인은 그에게 “부질없이 불사를 찾아 헤매는 일을 그만두고 먹고 마시고 즐겁게 지내라고 권합니다.

이 이야기는 아마 기원전 20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 후 이것은 메소포타미아 이외의 오리엔트 지방 일대에 널리 퍼졌습니다. 현세주의 혹은 세속주의라고 불리는 인생관을 담은 이 이야기는 그 후 히타이트인(Hittitles)과 헤브라이인들(Hebrews)을 통해서 서양에 전달되어 서양문화의 중요한 전통의 하나가 되었습다. 그리스로마신화나 구전되는 문학들이 이 서사시의 틀을 많이 따르고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맺음말

오늘은 수메르인들이 문자를 발명하여 어떤 유산들을 남겼고, 길가메시라는 대서사시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습니다. 수메르인들은 인류문화의 큰 기틀을 닦은것임이 틀림없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