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문명의 폴리스문화

크레타

에게 문명의 폴리스문화

에게 문명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에게문명이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 고대 문명이 발달하고 있던 기원전 3000년 전 크레타섬이라는 곳에서 성장한 문명을 말합니다. 이 문명사회에 대해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초의 서양문화

최초의 서양문화는 그리스에서 일어났습니다. 에게(Aegean) 문명의 뒤를 이은 그리스 문화는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과 자극 아래 개화했으나 오리엔트의 전 제국가와는 다른 폴리스(polis)를 터전으로 하여 성장했습니다. 폴리스에서는 전 제적 국왕의 지배하에 있던 신민과는 다른 시민이 정치를 주도해 나가고 그 속에서 인간의 창조력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 폴리스 문화는 이러한 시민들이 이룩한 가장 중요한 그리스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서양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페르시아 전쟁 후 그 절정에 도달한 그리스 문화는 알렉산드로스 대 왕에 의해 오리엔트 세계에 전파되어 이른바 헬레니즘 문화를 낳았습니다.
로마 는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고대의 여러 문명을 종합하여 지중해 세계의 문명을 이룩하고 다시 이것을 유럽 여러 나라에 전파했다. 한편 로마 제국의 한 속에서 발생한 그리스도교도 로마 세계를 통해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헤브라이즘)는 그리스 정신(광의의 헬레니즘)과 더불어 서양문 화의 밑바닥을 흐르는 2대 조류로서 이후 유럽 역사를 관통하게 되었습니다.

크레타섬의 문명과 트로이 신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 고대 문명이 발달하고 있었던 기원전 3000년기 와 2000년기 동안에 지중해의 크레타(Creta)섬에는 다른 또 하나의 문명이 성장하여 점차 에게해의 여러 섬과 그리스 본토, 그리고 소아시아의 서부지 역에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 1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문명에 관해서 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크레타의 미노스(Minos) 왕에 관한 전승이나 트로이(Troia) 전쟁의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는 대체로 신화나 서사시인들의 공상으로만 여겨져 왔습니다. 소설속의 이야기로만 전해졌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후엽부터 그러한 신화나 서사 시에 이끌린 몇몇 학자들의 발굴과 연구를 통해서 그것들이 한낱 허구만은 아니고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라는 점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에게문명의 부와 문명사회

에게 문명 중에서도 가장 먼저 발달한 크레타 문명은 영국의 고고학자 써 아서 에번즈(Sir Arthur Evans)의 발굴과 연구의 결과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미노스 왕의 이름을 따라 미노아 문명이라고도 불리는 크레타 문명은 기원전 3000년기 중엽에 청동기시대에 들어선 것으로 보이는데, 그 전성기는 기원전 2000년부터 1500년경까지였습니다. 이집트왕국과 마찬가지로 아주 오래된 고대왕국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고조선과 같이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문명국가들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소아시아 지방에서 이 섬으로 이주해 온 것으로 짐작되는 크레타인들은 그리스 본토보다는 오리엔트 지역과 더 밀 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문화도 오리엔트의 문화와 비슷 한 점이 많았으나, 그러면서도 독자적인 특징을 또한 지니고 있었습니다.
가령 그들의 국왕 미노스는 이집트의 파라오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지배자로 군림했으나 군사적 정복자는 아니었습니다.

크노소스 궁전과 미노스 미궁

국왕은 오히려 국내 최대의 자본가요 사업가로서 그의 권력은 공업생산과 교역을 통해서 획득한 부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군림하는 국왕이 아니었으니 국가가 더욱 발전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크노소스(Knossos)의 궁전은 그의 부가 얼마나 강대했으며 그들의 생활수준이 얼마나 높았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
거창하고 복잡하며 화려하고 편리한 이 궁전은 전설에 나오는 미노스의 미궁(labyrinth)이 단순한 허구만 은 아니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맺음말

오늘은 크레타섬의 문명인 에게 문명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고대왕국들은 다양한 곳에서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